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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쁜 우리 사랑은, 2016.07.17
  2. 3월 음반 가이드 (9와 숫자들, 유예) 2014.10.10

기쁜 우리 사랑은,


세상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어렵다고 하는 연애마저도.

그러니까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되잖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아'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웹툰 <유미의 세포들>식으로 표현하자면 초유미 상태라고나 할까?

'마음 가는대로'라는 것의 주문은 꽤나 강력해서, 고백하기 전이라면 '그래 해버리자!'라는 용기를, 잘 안풀리는 연애가 고민일 땐 '문제가 뭐든 잘 풀고 맞춰나갈 수 있을거야!'라는 낙관성을 심어준다.

이 곡을 처음 들었던 건 5년 쯤 전인가, 낯선 동네에서였다. 그때 우리 무리들은 지인의 옥탑방 평상에 앉아 육포 같은 걸 뜯고 있었던가. 멍 때리고 있던 내 귀에 이 노래가 들려 왔다. 옆에는 당시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있었고 그날의 분위기는 꽤 괜찮았다. 결말만 말하자면 그와 난 잘 안 됐다. 우리 인생은 만화나 드라마가 아니라고. 밑도 끝도 없는 운명이라거나 해피엔딩 따위는 없는 거다.

모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염문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얘기들이 많다. 낭만적 사랑 운운하는 사람들에서부터, 여성과 남성의 권력 차로 인한 문제라는 입장, 그들의 사생활이니 우리는 예술에 대해서만 말하면 된다는 식의 예술지상주의까지. 어디까지나 그들과 배우자 간의 문제이니 내가 단죄 내리고 싶은 생각은 전무하나, 약간의 애잔함은 남았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현재진행형일 때는 원래 다 맞다. 아니 다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과거형이 되는 순간,  채점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몰랐던 게 보이든 뭔가가 달라졌든 여하튼 모종의 이유로 마음이 어긋나기 시작하고 다툼이 생기다 더이상 틈을 붙여낼 수 없는 어느날 남이 된다. 사랑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얼이 빠진 상태로 시작해 이런 결말로 끝나지 않나 싶다.


 


*

오늘, 밥 먹다가 아주 오랜만에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5분 간 일시적으로 초자아, 무한긍정 상태가 되었지만 여전히 난 외롭다. 그래. 어찌보면 사랑에서 영원을 찾는 것이 어리석은 게지. '한 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박준, 「마음 한철」) 한 철이라도 쥐어주었으면 충분한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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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음반 가이드 (9와 숫자들, 유예)

또다시 봄이 왔다. 4년 전 설레던 마음으로 서울행 기차를 탈 때의 봄, 2년 전 추운 겨울 끝에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며 맞았던 봄. 계절은 똑같이 봄인데 그때만큼 설레거나 기쁘지는 않은 것 같다. 봄은 봄인데 뭔가 밍밍한 이게 봄인가 싶은 그런 기분이다. 예전엔 꽃잎만 날려도 마음이 콩닥콩닥 뛰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젠 내가 봄의 에너지를 못 따라가는 건가! 오랜만에 예전 사진들을 보았다. 옛날 내 모습을 보면 늘 이상한 기분이 된다. 내가 저랬었나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 같기도 하고. 서울에 있을 때의 내 모습을 보면 특히 그렇다. 매주 꼬박꼬박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여러분을 만나러 갔던 그때의 마음이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무모한 열정이었던가를 새삼 깨닫는다. 솔직히 그땐 그 얘기에 나이 많은 분들이 왜 놀라는지도 잘 몰랐었다. 그만큼 나도 순수한 열망이나 동경을 많이 잊어버린 건지도. 하지만 사실 내 청춘은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데 말이다. 망설이고 방황하고 자연인인 내가 아닌 뭔가가 되어야 한다면 그게 ‘뭐’인지 아직 잘 모르겠는, 그런 상태. 달라진 게 있다면 스물 한 살 그때는 무엇도 아닌 스스로를 내심으로는 자랑스러워했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스스로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점일까. 자신의 젊음을 담보로 선택의 시간을 대출한 청춘(靑春)이 봄에 감탄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졸업을 유보하고 결혼을 유보하고. 사회 진출 시기건 결혼 시기건 남녀 불문 몇 년 씩은 뒤로 미뤄진 걸 체감하게 된다. 그래도 일단은 취업준비란 걸 하고 있고 나름 매일의 목표를 갖고 열심히 살고는 있으니 이렇게 살다보면 뭐라도 되긴 될텐데, 그게 과연 내가 원하던 인생의 모습일지에 대한 자신은 없다. 그렇게 공허함은 깊어져 간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사진은 3년 전 남산에서

 

9와 숫자들(이하 9숫)의 <유예>는 이렇게 떠밀리듯 살아가고 있는 청춘을 노래하고 있는 앨범이다. 달달하고 말랑한 것과는 거리가 먼, 인생 본편이 아닌 번외편 같은, 현재의 행복은 먼 훗날로 계속 밀려나는 그런 끝없는 유예의 시간들. “아프니까 청춘이었지”라고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지 않고 그냥 계속 아프기만 한 시간들. 그런 솔직한 마음이 9숫의 노래에는 녹아 있다.

 

 

조약돌, 종달새, 찢기고 구겨진 흔적만 남은 공책, 화자가 표현하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다. 보잘 것 없고 비루하지만 어느 노래가사에서인가처럼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완전함은 결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부족함을 견디지 못해 자꾸 밖으로 도는 모습은 익숙한 너와 나의 과거-혹은 현재- 아니던가. 이제 그는 그런 여정에 지친 듯 보인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중 하나의 색만이 허락된다면 아무도 보지 못하게 모두 검게 칠해버릴 거”라는 말에서는 소통하는 것 자체에 피로해져 자포자기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어디까지 유예되었을까? 우리 꿈들은.

 

 

 

혹시나 인생이 잘 풀리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면 ‘눈물바람’을 들어보길 권한다. “언제부턴가 내 등 뒤론 자꾸 시린 바람이 따라붙어 / 도망쳐봐도 이미 내 눈은 / 함빡히도 젖어 있었네”라며 되풀이되는 후렴구를 따라하다 보면 마치 혼자 방안에서 펑펑 울고 났을 때 같은, 그런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9숫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영화로 치자면 신파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과잉 연출된 것이 아닌 일상의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위에 소개한 두 곡은 청춘의 내면심리를 다룬 곡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사랑 노래에서는 보통 기름기가 들어가기 쉬운데 9숫은 굉장히 담담하게 노래해서 참 좋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

 

부끄러운 내 말들에도 밝은 웃음으로 대답해주는 사람

어리숙한 내 몸짓에도 듬직한 손으로 내 볼을 만져준 사람

비가 와도 내겐 우산이 없어 흠뻑 젖은 채로 혼자 걷던 어느 날엔가

힘을 내어 고개를 들었을 때 별로 예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지만

내 눈에는 그대만 보였네 거대한 인파 속에서 나만이 아는 빛으로 반짝이던

그대만 믿었네 이 거친 세상 속에서 난 오직 그대만 좋았네

-9와 숫자들, ‘그대만 보였네’

 

정말 예쁘지 않은가. 잘 세팅된 드라마 촬영장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옆에서 벌어질 수 있는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 노래라는 점에서 난 이 곡이 참 좋다. 9숫도 그걸 노렸는지 '그대만 보였네'는 이번 앨범 타이틀곡이기도 하다.

 

<유예>는 1집 <9와 숫자들> 이후 무려 3년 만에 나온 음반이다. 인터뷰에 따르면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겸업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색만을 택해야 한다면 모두 검게 칠해버리기”의 현실적인 방법은 낮에는 돈을 벌고 밤에는 꿈을 꾸는 것일까? 어떻게 풀어나가느냐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쨌거나 꿈꾸기를 멈추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적인 목표가 있어도 큰 그림이 없다면 떠밀리듯 사는 인생과 다름없으니까. 좀 더 열심히 아등바등 일하면서 떠밀려나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래서 요즘 매일 매일의 일과 속에서 틈틈이 버킷리스트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시작을 못했다. 다같이 블로그에 버킷리스트 올리기! 이렇게 정하면 좀 빨라지려나 하하. 정윤미양 결혼식 축하를 위한 봄노래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음반 가이드를 빙자한 3월 하소연을 마친다. (2013/03/31, 백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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